추억의 고전 게임: Scorched Earth
| 분류: 취미생활 및 그 자료들 | 최초 작성: 2011-06-22 02:51:25 |
이미 녹슬어버린 지식이라서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성경말씀 어딘가에 아마,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으랴!" 라는 말이 있었을 것이다. 성경을 기록하신 분의 의도는 아마도 "인간들이 아무리 날뛰어 봐야 모든 것은 다 하느님 손바닥 안이니라." 라는 뜻이었겠지만, 때로는 무차별적 모방과 베끼기를 정당화시키는 (희한한) 논거로도 쓰이는 모양이다. 물론 모든 창조의 시작은 모방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또한 진리이기도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 - 요즘도 서비스가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서비스하던 당시에도 안 했기 때문에 -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게임 중에 "포트리스(Fortress)" 라는 온라인 게임이 있었다. 지형 안에 각자의 탱크를 배치하고 적절한 무기와 강도, 포신의 각도를 맞추어서 다른 플레이어의 탱크를 요격하면 승리하는 게임이었다. 학부 2학년 때, 기숙사 방을 함께 썼던 룸메이트가 이 게임을 엄청나게 해댔던 기억이 난다.
포트리스 2의 실행 화면. (화면 출처: http://blog.naver.com/nanuke0407/40119377387 의 이미지를 일부 수정)
사실, 필자는 이 게임을 처음 보았을 때 약간 어이없음을 느꼈다. 약간의 반가운 감정도 함께. 왜냐 하면, 오늘 이야기하려는 이 게임, Scorched Earth 라는 게임과 그 컨셉과 플레이 방식이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을 그래픽을 조금 수정해서 온라인으로 옮겨놨다고 해도 될 정도였으니..
여기까지 이야기했다면 이 게임에 대한 설명도 웬만큼 다 하지 않았나 싶다. 포트리스와 마찬가지로, 1995년에 나온 이 게임도 자신의 고정된 탱크를 이용하여 상대방의 탱크를 요격하는 게임이다. 포트리스가 온라인 게임이지만, 이 게임은 패키지 게임이었고, 네트워크 멀티플레이는 지원하지 않는다. 대신, 턴제 게임이어서 여러 명이 한 자리에서 함께 할 수 있다. (최대 10명까지 지원한다.) 물론, 사람 대신 컴퓨터와 대전을 할 수도 있다.
게임을 실행하면 나타나는 첫 화면. "The Mother of All Games" 라는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메뉴는 마우스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시대상) 키보드로도 불편함 없이 이용이 가능하다.
위에 보이는 화면이 바로 게임을 실행시켰을 때의 화면이다. 여러 가지 메뉴들이 많이 보인다. 이 게임을 처음 만났을 때가 아마 중학교 때였을 텐데, 몇몇 단어들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쉬운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게임 진행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다른 세팅들은 거의 건드리지 않고 게임을 즐겼던 것 같지만, 사실은 상당히 사실적인 여러 가지 설정들도 건드릴 수 있다. 예를 들면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계속 변하도록 한다던지, 궤적 계산에 적용되는 중력 등을 더 강하거나 약하게 한다던지, 등장하는 지형을 좀더 험악하게 한다던지 등등. 간단히 바람의 방향과 속도가 계속 변하도록만 세팅해도 게임의 난이도는 엄청나게 올라간다.
Landscapes 항목의 설정 화면. 바람의 최대 세기 등 게임의 배경이 되는 설정들을 수정하여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다.
당시에는 네트워크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 게임이 손으로 꼽을 정도였고, (게다가, 당시에는 멀티플레이라고 하면 전화선 모뎀이나 직렬 포트를 이용한 컴퓨터 대 컴퓨터 직접 연결이 거의 다였다고 보면 된다. 전화세 내가면서 멀티플레이? 잘못하면 맞아죽는다.) 이 게임 역시 앞에서 말한 대로 네트워크 멀티플레이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여럿이 함께 게임을 하려면 친구들을 내 방으로 불러모아야 했다. 매일같이 그럴 수도 없는 지경이라, 주로 컴퓨터와 많이 대전을 했다. 물론 컴퓨터의 실력은 천차만별. 바보짓밖에 할 줄 모르는 Moron 부터, 단순한 지형이 걸리면 손도 써보기 전에 라운드가 끝나버리는 Spoiler 나 Cyborg 같은 녀석들까지. 물론 아무나 걸리라는 심정으로 Unknown 을 선택해도 된다. 그렇다고 컴퓨터의 인공지능이 매우 좋은 건 아니다. (이런 류의 게임에서 컴퓨터의 인공지능이 너무 높으면 플레이어는 손도 못 써보고 당하기만 할 것이다.) 플레이어 전원을 컴퓨터로 넣을 수도 있기 때문에, 컴퓨터로만 한 4명 넣어 두고 누가 이길지 관전하는 재미도 꽤 있다. 물론, 가끔은 멍청한 컴퓨터들이 엉뚱한 데다 대고 공갈포만 쏴대는 속터지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플레이어 설정 화면 중. 다양한 수준의 인공지능을 상대로 대전이 가능하다. 화면에서처럼 컴퓨터를 Unknown 으로 지정하면 랜덤한 난이도로 플레이할 수 있다.
게임이 시작되면 일단 지형이 랜덤으로 생성되고 그 지형의 곳곳에 랜덤하게 탱크가 놓이게 되는데, 때로는 평탄한 지형에 바로 코 앞에 탱크가 놓여서 한 방에 가루가 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어떤 경우는 지형이 벽 역할을 해서 정말 공격하기 난감한 상황이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아래 그림과 같이 거대한 산을 사이에 두고 있을 때 바람이 강하면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 된다. (바람을 등지고 있건 안고 있건, 조준하기 난감한 건 마찬가지다.)
게임 화면. 높은 산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대치중이다. 상단에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표시되고 있다. 바람을 안고 전투를 수행하는 경우에는 발사한 미사일이 바람에 뒤로 밀리기도 한다.
첫 라운드에 주어진 미사일은 Baby Missile 뿐이다. 탱크를 정확하게 타격해야만 상대편 탱크가 폭파되는 그야말로 약한 미사일이다. 생각해야 할 것은 바람의 방향과 세기, 포의 각도, 포의 세기. 이상적으로 잘 맞추어서 적 탱크에게 명중시키면 성공. 물론 적 탱크도 놀고만 있지는 않으므로 가능한 한 빠른 턴 내에 요격을 완료해야 한다.
탱크가 일단 요격되면, 탱크는 폭파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여기에 또 한 번의 반전. 일단 무기가 탱크에건 지면에건 명중하면, 그 무기에 고유한 폭발 효과가 나타난다. 이 효과는 정말 다양한데, 무기에 따라서 폭발 없이 그 자리에만 작은 구덩이를 만들기도 하지만, 거대한 폭발이나 파편을 날리면서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 폭발에 휩쓸리면 최소한 없어진 땅바닥을 향해 추락이고, 운이 나쁘면 함께 황천행을 하기도 한다.
운 좋게 추락으로 끝나더라도 좋은 상황이 아닌 것이, 만약 게임 중 탱크가 추락하면 추락한 탱크가 그 만큼의 데미지를 입는다는 설정이라, 추락 데미지가 탱크의 방어 한계치보다 크다면 함께 폭파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추락한 후의 탱크는 데미지를 입은 만큼 낼 수 있는 파워가 줄어들게 된다. 즉 자칫하면 공격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 - 살아도 살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 - 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다냐면, 아니다. 만약 미사일이 탱크에 명중한 경우, 무기의 폭발이 끝나고 나면, 그 탱크(내지는 그 탱크에 장착되어 있던 무기라고 생각해도 되겠다)의 후폭발이 한번 더 일어난다. 어떤 후폭발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래 화면을 보면, 현재 공격한 컴퓨터 플레이어는 분명히 Baby Missile 을 사용하여 적 탱크를 요격했는데, 후폭발은 Baby Nuke 다. 폭발한 탱크 내부에 Baby Nuke가 장착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에이 설마..
인공지능 플레이어가 발사한 Baby Missile이 다른 인공지능 플레이어에 명중했다. 맞은 건 Baby Missile인데, 후폭발의 이펙트는 Nuke 다. 당연히, 휩쓸리면 위험하다.
어찌 되었건, 화면 내의 탱크를 모두 요격하면 한 라운드가 종료되고, 각 플레이어는 자신의 성과대로 돈을 벌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한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플레이어는 벌어들인 돈으로 무기나 여러 가지 아이템을 살 수 있다. 드디어 Baby Missile 외에 더 강력하고, 더 범위가 넓은 무기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떨어지자 마자 사방팔방에 파편을 날리는 Funky Bomb 라던가, 땅에 닿자마자 경사면을 따라 굴러내려가 경사면이 끝나는 부분에서 폭발하는 Roller 라던가, 땅에 닿는 순간 지진을 만들어 그 주변의 땅을 내려앉게 만드는 Digger/Sandhog 류 등 정말 다양한 상황에 쓸 수 있는 무기들이 있다. 아, 무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추락할 때의 데미지를 감소시켜 주는 낙하산(Parachute)이라던가, 탱크 주변에 방어막을 쳐 주는 아이템, 적 탱크를 향한 조준을 도와 주는 아이템도 존재한다. 물론 이런 아이템들을 사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탱크를 부수고, 또 최후까지 살아남아 돈을 벌어야만 하겠다.
라운드가 끝난 후, 골드가 있다면 이처럼 상점 화면이 나온다. 다양한 무기들이 보이고 있다. 화면 가운데에 보이는 슬라이더를 상자 쪽으로 당기면 낙하산 등 아이템 상점으로 이동한다.
이런 식으로 정해진 라운드 (기본값은 10 라운드이지만, 설정에서 더 늘릴 수도 있다.)가 끝나면, 이와 같이 게임의 결과가 나오면서 순위가 공개된다. 일단 최후까지 살아남은 숫자가 많은 쪽이 우선이고, 최종 생존 횟수가 같다면 벌어들인 돈이 많은 쪽이 승리. 아래 화면에 보이는 게임은 필자와 컴퓨터 3명 (모두 Unknown이었다.)이 10라운드 대전을 벌인 결과다. 초반 라운드에 신들린 타격을 한 컴퓨터 덕분에 꽤나 고전하다가 (초반에 공격받아 폭사하고 컴퓨터들끼리 노는 걸 멍하니 지켜본 라운드가 몇 라운드인지 모르겠다.) 막판에 지형의 도움을 받아 남은 라운드를 쓸어담아 결국 1위로 역전한 모습이다. (푸하하하...)
처음에 지정한 10라운드가 모두 끝났다. 순위는 각 라운드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은 횟수가 많은 순서대로. 살아남은 횟수가 같다면 더 많은 돈을 번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이 게임을 보면, 그 시절 명절 때의 기억이 난다. 어떤 명절이었던가. 어른들은 마루에서 국민게임 고스톱을, 그리고 나는 친척 동생들과 방에서 컴퓨터로 이 탱크 대전을... 아하하하...
잠시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에, 가끔씩 돌려 보면 좋을 게임이다. 1995년이니까 MS-DOS 용 게임이지만, DosBOX 를 이용하면 지금도 얼마든지 플레이가 가능하다. 이 게임은 출시 당시에는 Shareware 였으며, 현재 Abandonware 상태이다. 다운로드는 아래에서 받을 수 있다.
Abandonware란, 오늘 현재 그 프로그램의 제작자를 알 수 없거나, 프로그램을 제작한 회사가 사라지거나, 혹은 아직 존재하더라도 그 판매가 종료되어 더 이상 제작사가 저작권을 주장하지 아니하는 등으로 사실상 버려진 프로그램을 말한다. 법률적으로는 분명 누군가에게 그 권리가 살아 있을 것이므로, 그 권리가 실효되지 않는 한, 차후에라도 어딘가에 있을 저작권자가 프로그램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 권리가 인정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권리 자체가 사라진 상태인 Public Domain 과는 다르다.
따라서, 현재 이들이 Abandonware 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상에 자유롭게 유포되고 있지만, 그 Abandonware 라고 하는 지위는 사실 잠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권리가 남아 있다는 것과, 현재의 시점에서 이런 MS-DOS 시절의 게임이 상업적인 가치를 갖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도 저작권자가 이 프로그램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서 유통을 차단시킬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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