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l-Networks Archive
| 분류: 컴퓨터 사용 경험 | 최초 작성: 2012-03-01 19:23:35 |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필자 역시 상당히 귀찮은 걸 싫어하는 성격이다. 뭔가에 필이 꽂히면 결벽증적인 집착을 보여주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이런 귀찮은 종류의 글을 쓰는 것도 그다지 내킬 턱이 없다. 10년 넘게 웹에 글을 쓰면서 홈페이지 시절과 블로그 시절 합쳐서 400개 남짓 정도 되는 글이라면 뭐 말 다 하지 않았을까. (물론 다른 곳에 쓴 글과 날아간 글 등을 합치면 한 100개 정도 더 늘어나겠지만, 그래 봐야 대세에 영향이 있을까 싶다.)
이런 성격상, 필자가 이런 번거로운 짓을 시작했다는 것은 필시 이 물건이 양 극단 - 매우 좋거나, 혹은 매우 나쁘거나 - 의 물건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이 물건은 정확히 후자에 해당한다. 물론 이유는 있다.
다나와 블로그 링크 : http://blog.danawa.com/prod/?prod_c=1497305
당연하게도, 이 물건은 기본적으로 키보드이다. 다만 조금 특수한 종류의 키보드인데, 일반적으로 실리콘 키보드, 또는 롤 키보드라고 불리는 키보드로서, 아래 사진처럼 사용할 때는 일반 키보드처럼 사용하고, 보관할 때는 그대로 둘둘 말아서 가방 등에 넣어가지고 다닐 수 있다. 접이식 키보드 못지 않은 휴대성이 강점이다.
뛰어난 휴대성 이외에, 이 제품의 또 하나의 강점은 소음이 적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필자가 이 제품을 산 이유인데, 소음의 발생을 절대적으로 방지해야 하는 독서실 등에서 간단한 타이핑을 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독서실 칸막이 옆 사람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조용한 타이핑이 가능해진다. 재질이 실리콘이라, 오래 사용해서 더러워지면 그대로 물 세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다. 물론 아직까지 세척해야 할 일은 없었지만, 필자처럼 커피를 잘 쏟는(...) 사람이라면 이것도 분명한 장점이 될지도 모른다.
내구성 부분은 일단 한달 반 정도 사용해 본 상태라 뭐라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날카로운 물체로 인해 키보드가 찢기거나(실리콘 재질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접힌 상태로 심하게 압력을 주는 등의 무리한 사용을 하지 않는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서 민감할 수가 있는 것이 키감의 문제인데, 분명 키감은 그다지 좋지 않다. 빠른 속도의 타이핑도 어렵다. 일반적인 키보드와 달리 고무(실리콘)재질이어서 키가 눌리는 각도가 좀 많이 어긋나면 키가 눌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느려진다는 것은 아니고, 장문 기준 350타 정도까지는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다. (물론 다소의 오타가 있을 수는 있다.) 약간은 강하게 타이핑을 해 주는 것이 오타율을 줄이는 방법이지만, 그 반대급부로 장시간 타이핑을 하면 손가락 끝이 상당히 피로해질 수 있음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리콘 키보드가 갖는 일반적인 한계일 것이기에, 이것을 흠잡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여기까지라면 필자가 이 제품을 잡고 버럭버럭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제품은 키보드로서 상당히 큰 문제점이 하나 있다. 만약 이 제품의 다른 모델이 나온다면 필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위 사진은 이 키보드의 좌하단의 사진인데, 일반적인 키보드와 키 배열이 다르다. 보통은 키보드의 가장 아랫줄에 있어야 할 ALT 키가 아래에서 두 번째 줄에 배치되어 있다. 표준적인 키보드 배열과 조금씩 키 배열이 달라지는 것은 최근의 다기능 키보드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할 것이기에 이해해주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그 기능을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나 허용될 일이다. (일반적인 멀티미디어 키보드에서 Home, End, Insert, Delete 등의 키가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대개 이런 경우이겠다. 대개 단독으로 쓰이고, 타이핑시에 그 위치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다르다. 타이핑에 심각한 방해요소가 된다.
구체적으로, ALT 키가 저 위치에 있음으로 인해, 대개는 A 밑에 있어야 할 Z 키가 ALT 키에 밀려 일반적인 키 배열보다 1/2~2/3 정도 더 오른쪽으로 이동되어 있다. 그 결과 일반적인 타이핑시에도 표준키보드의 버릇대로 ㅋ을 입력하려다 ALT 키가 눌리는 일이 다반사다. 윈도우에서는 ALT 키를 상단 메뉴 호출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갑자기 포커스가 메뉴 바로 이동하여 타이핑의 맥이 끊기곤 하는 것이다.
게다가, 문서 편집시에 정말 많이 하게 되는, CTRL-Z,X,C 입력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 CTRL-X (오려내기) 를 눌러야 하는 상황에서 CTRL-Z (되돌리기) 를 누르게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는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특히 CTRL-Z (되돌리기) 기능의 특성상, 이것이 예측하지 못한 파장을 불러오는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휴지통에 던졌던 파일이 원위치로 돌아와 있다거나, 한 1만 줄 정도 되는 텍스트 파일을 편집하던 와중에 키가 잘못 눌려 대체 어디의 수정 부분이 원위치된 것인지 한참 찾아야 한다거나... 사소한 키 배열의 변경이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여파는 심각하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Z 키가 안쪽으로 밀려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새끼손가락을 안쪽으로 밀어넣거나(Z/ㅋ을 입력하는 경우), CTRL 키를 누른 상태에서 반 키 정도 더 오른쪽을 클릭한다는 생각으로 X 키를 눌러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차 하는 사이에 이미 오타는 나 있고, 그때마다 짜증은 늘어만 간다.
백보 양보해서, 만약 이것이 보통 크기의 키보드가 아닌 미니 키보드라면, 이런 상궤를 벗어나는 키 위치 변경이 그나마 정당성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한정된 좁은 공간 안에 키를 모두 밀어넣으려다 보면 아무래도 커스터마이징의 폭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키보드는 사이즈는 보통의 키보드와 거의 같은 크기이다. 공간 때문에 키 배열을 조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랫줄의 키 사이즈 - 하다못해 스페이스 키 - 를 조금씩만 조정하면, 하다못해 좌우 양쪽에 쓸데없이 두 개나 있는 윈도우 키를 하나 없애기만 해도 충분히 ALT 키 하나 배치할 공간은 나온다. 이래저래 납득하기 어려운 디자인이다. 만약 이 모델이 차후 개선되어 출시된다면 이 부분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제품이 언제부터 출시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롤 키보드라는 발상 자체는 매우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틈새수요가 있을 제품이고, 제대로만 만든다면 팔릴 물건이다. 그러나 분명 이 제품은 "키보드"이고, 그렇다면 사람들의 일반적인 키보드 사용 습관도 고려하여 제품을 설계해야만 한다. 이런 부분에서부터 실기를 하고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고 본다.
☞ 태그: 롤 키보드, 실리콘 키보드, KB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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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니리 님께서 2012-03-05 20:47:32 에 작성해주셨습니다.
나는 기계식 키보드
정숙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연구실에서 나는 기계식 키보드
내 덕에 옆에 있는 녀석도 지른 기계식 키보드
그 녀석이 뭔가 흥분하면 키보드 타격소리가 더 커지는 기계식 키보드
내 잘못인가...
⇒ 부엉이 님께서 2012-03-06 09:13:14 에 답글을 작성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옛날 IBM 키보드의 짤깍거리는 소리는 좋아합니다만...
대체 연구실에서 기계식 키보드라니...
뭐랄까. IT 쪽 일하는 사람들이 기계식 키보드를 선호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이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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